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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작가의 방

한강- 고통, 치유, 자연에 대한 시적 서사 - 소년이 온다

by 사유사서 2025. 12. 8.

고통은 언제나 말보다 먼저 찾아옵니다.
그리고 언어는 그 고통을 따라가지 못할 때,
침묵하거나 시가 됩니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는 그런 책입니다.
역사의 상처를 말하려 하지 않으면서,
고통을 ‘느끼게’ 하는 언어로 기록된 작품입니다.
이 글에서는 한 문장—“고통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다른 생으로 변한다.”를 중심으로,
한강 문학의 사유를 따라가 보려 합니다.

🌿 1. 고통의 언어, 혹은 언어의 한계

『소년이 온다』는 1980년 광주를 배경으로 하지만,
이 작품은 사건보다 감각과 기억의 층위를 더 깊게 다룹니다.

한강은 폭력의 현장을 직접 묘사하기보다,
그 여파가 남은 사람들의 몸과 시간을 통해 고통을 말합니다.

“그날의 시간은 끝나지 않았다.
몸 속 어딘가에 남아 여전히 흐르고 있었다.”

이 문장은 단순한 문학적 수사가 아니라,
트라우마의 본질을 꿰뚫습니다.
고통은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형으로 존재하는 기억이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언어가 이 고통을 모두 옮길 수 없음을 압니다.
그래서 『소년이 온다』의 문장은
설명보다 묵음(黙音)으로 더 많은 것을 말하죠.



🌫 2. 한강의 문학, ‘인간성의 잔존’을 지키는 시도

한강의 작품은 언제나 인간의 가장 연약한 부분에서 출발합니다.
그녀는 상처 입은 인간을 기록하지만,
그 고통을 ‘절망의 서사’로만 그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녀는 “아직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근거”를
그 파괴된 세계 속에서 찾습니다.

“죽음이 지나간 자리에도,
여전히 누군가는 서로를 부른다.”

이 문장은 한강 문학의 근본을 압축합니다.
그녀의 소설은 현실의 폭력을 비판하는 동시에,
인간성의 끈을 다시 엮는 작업입니다.

『소년이 온다』 속 인물들은 부서지지만,
그 잔해 속에서 존엄의 씨앗이 자랍니다.
그건 문학이 할 수 있는 가장 고요하고 위대한 저항입니다.

🌳 3. 고통이 치유로 바뀌는 순간

한강은 “치유”를 빠른 회복으로 그리지 않습니다.
그녀에게 치유란, 고통을 잊는 것이 아니라 품는 일입니다.

『소년이 온다』의 인물들은 모두 잃고, 침묵 속에 살지만,
그 침묵 자체가 기억의 형태가 됩니다.

“그날을 잊지 않는 것이
그날을 견디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이 문장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잊지 못하는 고통은 언제 끝나는가,
혹은 끝나야만 하는가.

한강은 그 질문에 이렇게 답합니다 —
“끝나지 않아도 된다. 살아남은 자의 몫은 기억하는 일이다.”

그녀에게 치유란 망각이 아니라,
기억을 인간적으로 감당하는 용기입니다.

🌾 4. 자연, 그리고 생의 순환

한강의 문학에는 자주 자연의 이미지가 등장합니다.
꽃, 흙, 바람, 물결 같은 것들이 고통의 잔여와 함께 흐르죠.

이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생명과 회복의 은유입니다.

『소년이 온다』에서도
“풀잎이 흔들리고, 햇빛이 다시 비친다”는 묘사가 반복됩니다.
그것은 죽음을 넘어서는 ‘생명의 연속성’을 상징합니다.

“모든 것은 다시 흙으로 돌아가고,
그 흙에서 새로운 생이 돋는다.”

그녀의 시선은 절망 속에서도
자연이 품고 있는 조용한 순환의 질서를 놓치지 않습니다.
고통조차 결국은 새로운 생으로 이어진다는 믿음,
그것이 한강 문학의 가장 시적인 구절입니다.

🌙 5. 문학, 존재의 증언으로서

『소년이 온다』는 한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집단적 기억의 윤리에 대한 작품입니다.
그녀는 문학이 “사라진 이들의 목소리를 다시 불러오는 행위”임을 압니다.

그래서 이 소설은 독자에게 증인이 되기를 요구합니다.
읽는다는 건, 누군가의 고통을 잠시라도 함께 감당하는 일이니까요.

“당신이 이 책을 읽는다면,
그 소년이 온 것이다.”

이 마지막 문장은 독자를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그 사건의 ‘증언자’로 남게 됩니다.

한강의 글은 독자에게 선택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조용히 묻습니다.

“당신은 지금, 인간으로 남아 있습니까?”



🌸 마무리

한강의 문장은 얼음처럼 차갑고, 동시에 불처럼 따뜻합니다.
그녀는 언어의 끝에서 인간을 구합니다.

『소년이 온다』는 잔혹한 현실의 기록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시적 기도문입니다.

고통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언젠가 다른 생의 형태로 변해
누군가의 마음에 빛으로 남습니다.

그리고 그 빛을 이어주는 것이,
문학의 몫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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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 한강 - 교보문고

소년이 온다 | 말라파르테 문학상, 만해문학상 수상작 우리 시대의 소설 『소년이 온다』2014년 만해문학상, 2017년 이탈리아 말라파르테 문학상을 수상하고 전세계 20여개국에 번역 출간되며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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